외주업체 “중소기업 생존권 박탈하는 행태”

희망노조·협력업체 직원들 “직원들 희망 앗아가는 노동착취”

SK브로드밴드가 자회사를 만들어 협력업체 직원 5200여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으나 반발이 거세다.

초고속인터넷·IPTV 설치 업무를 아웃소싱 했던 일부 외주업체 대표들이 대기업 자회사의 시장 강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SK그룹 계열사 하나를 더 만들기 위해 중소기업 생존권을 강탈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는 SK브로드밴드 외주업체의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직원들의 희망을 앗아가는 노동착취라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업계에 따르면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은 9개 외주업체 대표들을 만나 위탁업체 대표들의 자회사 센터장 기회 부여, 위탁 계약 유지를 원할 경우 계약 유지 등의 대책을 전달했다.

외주업체 대표들은 지난달 31일 SK브로드밴드에 "중소 협력 업체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대기업의 횡포"라며 자회사 편입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공식 전달했다. 이들은 이날 세종시로 내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민원까지 제기했다. SK브로드밴드는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으로 불리는 협력 업체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이번 계획을 추진했지만 뜻하지 않게 '중소 협력 업체 죽이기'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협력업체 비대위 “중소협력업체 죽이는 것”

전국 협력 업체 모임인 SK브로드밴드전국센터협의회 강경준 비상대책위원회 선임 위원장은 "SK브로드밴드가 지금처럼 협력 업체와 직접 위탁계약을 하는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공정위 제소와 손해배상 소송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생존권 사수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SK브로드밴드가 각 협력 업체에 자회사 설립 계획을 전달한 직후인 지난달 18일 비대위를 구성했다. 강 대표는 "개인 고객 대상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 76개 중 30여곳이 1차로 공정위 제소에 참여했으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협력 업체들은 각각 직원 40~80명을 고용하고 있는 별도 중소기업이다. 강 위원장은 "협력 업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율이 6대4 정도였는데, SK브로드밴드의 요청에 따라 비용 증가를 감수하고 지난 4월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며 "그런데도 10여 년간 운영한 회사를 내놓으라고 하니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절반 이상 동의

SK브로드밴드는 일부 협력 업체의 반발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전체 협력 업체들의 절반 이상은 자회사 전환 방침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 측은 "협력 업체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자회사에 편입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며 "지난 26일 이형희 사장이 협력 업체 대표들에게 약속한 대로 원한다면 현재 방식대로 위탁계약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SK브로드밴드는 자회사 편입을 결정한 협력 업체에는 연간 제공하는 영업·설치 업무 지원금의 2배 이상에 달하는 액수를 보상금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퇴직금 정산 문제까지 고려해 협력 업체당 수천만원씩 추가로 지원한다는 뜻도 밝혔다.

소속 직원, 자회사 편입 ‘찬성’

협력업체 소속 직원들은 "장시간 노동·저임금에 시달려온 직원들이 좋은 일자리로 옮길 기회를 협력 업체 사장들이 가로막는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직원들은 2014년 노조를 결성해 SK브로드밴드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SK브로드밴드와 비슷한 갈등이 계속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희망연대 노조)도 지난달 31일 성명서를 내고 자회사 전환 거부하는 SK브로드밴드 외주업체를 비판했다.

희망연대 노조는 성명에서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는 것은 중간착취를 계속하고 싶다는 것으로 노동자 갈라치기에 나선 것과 다름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번 조치로 SK브로드밴드 노동자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외주업체 사장들은 “자회사는 또 다른 외주업체다”라는 악선전을 퍼트리며 노동자들을 유령노동자로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노조 관계자는 “SK그룹 계열사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해 100여개 중소기업의 생존권을 빼앗는 꼴”이라며 반발하지만, 그간 자기 잇속을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면서 중간착취를 하고, 사용자 책임을 원청에 떠넘기던 업체 사장들이 할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했다.

희망연대 노조는 “기본급 10%~15% 더 인상하고 복지는 열어두고 다 할 테니 자회사 가지 말고 있자”라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며, 일부 센터는 센터장들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온갖 악선전을 퍼트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외주업체 사장들은 경총에 교섭권과 체결권을 위임하고, 2017년 임단협 교섭에는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 등 SK브로드밴드 측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 위탁업체들은 재하도급, 개인도급으로 다단계하도급 구조를 만들고 장시간노동, 저임금, 근로기준법 위반 등 온갖 부조리한 행태를 자행해왔다며, 노동자를 중간착취하며 고통으로 몰아넣은 외주업체가 염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희망연대 노조는 설치기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과 고용불안 해소, 질 좋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고용구조 개선이 핵심적인 해결책이라며,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다 붙인다고 해도 중간착취에 용이한 현재의 구조로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외주업체 사장들이 SK브로드밴드와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노동조건 개선을 전데로 직접고용을 만들어 소속 직원들의 분노들 가라앉힐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