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대가, 이상우 작가가 신선한 역사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세종대왕 이도>는 127권의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인간 이도의 진면목을 그려낸 역사소설이다.

언론인 출신 작가 이상우는 사건을 취재하듯 세종에 관련된 조선왕조실록 163권과 다양한 사료 사이를 누비며 인간 이도를 조명한다. 때로는 시간 순으로, 때로는 사건 중심으로 왕의 발언과 행동을 촘촘하게 재구성 했다. 그렇게 저자가 읽어낸 이도의 내면과 시대의 흐름이 큰 붓으로 그려졌다. 대왕의 업적 이면에서 ‘살아 숨 쉬는 이도’를 담아낸 이상우 작가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위인 ‘세종대왕’을 재조명해 화제다.

- 세종대왕은 우리가 매일 산소처럼 사용하는 한글을 만든 만큼 삶에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는 위인이라 할 수 있다. 정치, 행정, 군사, 학문, 기술, 문화 등 다방면에 놀라운 업적을 쌓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뚜렷한 업적 탓일까,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 세종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천재 같고 모든 일에 옳은 판단만 내릴 것 같은 이미지이다. 하지만 세종대왕 역시 온갖 일로 고민했던, 우리처럼 살아 숨 쉬는 인간이지 않았겠나. 2006년 <대왕세종>으로 출간됐다가 이번에 사료를 보충하고 새롭게 단장해 재출간했다. 세종을 중심으로 한 조선 내부의 정치 상황이 전개되면서 김종서 장군과 화적 두목 홍득희를 중심으로 한 4군6진 개척의 두 갈래 이야기를 교차시켰다.

▲실록을 바탕으로 이도의 진면목이 그려졌다는 평이다. 소설 속의 세종 이도는 눈물과 고민이 많은 평범한 인간인데.

- 그렇다. 특히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은 사람으로 그려진다. 정치 논리에 휘말려 부인의 친정이 희생되자 소리 내어 울고 왕이 하는 일이 죄인 처형하고 유배 보내는 것밖에 없냐며 술에 취해 한탄한다. 형 양녕대군이나 아들 임영대군이 온갖 망나니짓을 하고 다녀도 싸고돌기 바쁘다. 일을 진행하는 것도 의외로 감정적이고 고집스럽다. 세상을 뜬 왕후를 위해 시작한 불당 건립에 대소 신료들은 물론 전국의 유생까지 반대해도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금주령을 시행하면서도 왕 자신은 궁궐의 주연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삼강행실도’를 전국에 배포할 정도로 윤리 교육에 고심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그릇된 행실은 슬쩍 눈 감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황희 등 아끼는 신하는 잘못을 저질러도 계속 중임을 맡긴다.

▲실제 세종의 치세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 아버지 태종이 살아서 상왕으로 군림하는 상황에서 실권을 갖지 못한 채 왕위에 올랐다. 남에서는 왜구가, 북에서는 여진이 침범하며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유학과 양천 신분제도는 장점만큼이나 부작용도 뚜렷했다. 왕은 그 틈바구니에서 아직은 신생 국가인 조선의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그 과정이 무척 인간적이다. 인간 이도의 고민들이 결국 이 땅을 바꾸기도 했고.

- 세종은 고민하고 한탄하고 정에 흔들리면서도 “모든 일은 사람을 중심으로”라는 말 한 마디를 가슴에 품고 있다. 자신의 고뇌를 하나하나 결실로 바꿔간 것이다. 명재상 황희, 천민 출신 기술자 장영실, 천재 악사 박연 등 그가 반대를 무릅쓰고 기용했던 사람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낸다. 강력한 군왕이었던 아버지 태종의 입김이 닿지 않는 분야를 찾다가 육성하게 된 집현전이 왕의 길을 든든하게 지원한다. 부인에게 마음을 쓰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다 보니 궁에서 일하는 무수리들의 출산 휴가까지 챙기게 된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벌주어야 하는 입장이 고달파 평민이나 천민이 잘 모르고 죄를 짓거나 억울하게 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교육하고 서로 이해할 방도를 고민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여린 마음이 고통 받는 상민들과 천민들의 삶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깊고 외로운 고민은 ‘한글 창제’라는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읽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결국 ‘사람’을 향한 평범한 마음이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나.

- 평등한 과세를 위한 세법 연구, 생활과 농사 편의를 위한 자격루와 측우기의 개발, 왜구 토벌과 북방 영토 개척, 세종의 업적은 한글창제 이외에도 읊기가 민망할 만큼 끝이 없다. 그 모든 것에는 사람들을 다 같이 잘 살게 하고자 하는 마음,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앞으로도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에 놀랍고 위대한 인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범상치 않은 행적의 시작에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독자들이 느낀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