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간 과도한 경쟁 줄이고

상장사 수준의 경영정보 공개 필요”

시중은행과 카드사의 수수료에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서민금융 비중 경감을 위해 최근 내놓은 수수료 인하 및 감면 조치도 수수료 이익 과다 지적에 대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자영업자들은 더 낮춰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카드 업계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수료를 인하했다며 더 내리면 카드사가 손해를 본다고 주장한다. 카드사들은 영세업체들의 경우 사실상 수수료 부담이 없고, 수익구조상 더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지난해 가맹점 수수료 수익 7조2000억원 가운데 각종 비용을 빼고도 수수료 순이익이 1조원에 달해 이 중 일부를 중소상인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카드사들 수수료 인하 압박에 반발

정부와 정치권이 수수료를 추가 인하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수수료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자 카드사와 은행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포퓰리즘적 수수료 인하 요구까지 수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여당이 수수료율을 매출 규모나 업종별로 차등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경제논리에 맞지도 않으며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발끈했다.

카드업계는 가맹점 수수료율을 모든 업종에 1.5%로 동일하게 적용하면 장사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신한, 롯데, 비씨, 삼성, 현대, KB국민, 하나SK 7개 카드사는 지난 17일 중소가맹점 범위를 연매출 2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수수료율을 1.8% 이하로 낮췄는데도 정부가 ‘수수료율 일괄 인하’를 요구하자 격분하고 있다.

대형 카드사의 재무담당 임원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중소상인에게 1.8% 이하의 수수료율을 적용하기로 한 건데 무조건 더 내리라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A카드사 관계자는 "시장 논리로 결정되는 수수료 구조에 간섭하는 것은 사기업의 경영을 관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수수료가 낮아지면 부가서비스 혜택 등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B카드사 관계자는 "현 추세대로라면 정부가 납부대행수수료를 보전해주려고 하겠느냐"며 "일방적으로 수수료율 인하, 무이자 할부방안 등을 통해 카드사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면 추가 손실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은행들도 수수료로 떼돈을 벌었다는 비난 여론에 대해 업계 실상과 차이가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수수료를 낮추는 방향으로 흘러가겠지만 업무처리에 들어가는 원가도 상당하다"며 "소외계층에 대한 수수료를 내린 것에 추가 인하가 이뤄질 경우 수익성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은행·카드사 사상최대 수수료 잔치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8개 시중은행의 수수료 이익은 2조2567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카드사들의 가맹점수수료 수입도 4조95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8.6%나 늘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시중은행의 수수료 수익이 전체 수입의 40% 이상을 차지한다"며 금융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수료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금소연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은행이 거둬들인 수수료 수익은 8700억원으로 당기순이익(110억원)의 79배에 달한다. 신한은행은 당기순익(1조6500억원)의 47%에 해당하는 7700억원을 수수료 수익으로 챙겼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당기순이익의 42%, 41% 가량인 4620억원, 4060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 우리·국민·하나·신한 등 4대 은행이 소비자에게 청구하는 수수료 종류도 평균 138건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당국이 직접 제어하진 않겠다"면서도 "스스로 들여다볼 때가 됐다"며 금융업권의 과도한 수수료 체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카드사간 과도한 경쟁 줄여야

현재 국내에서 발급된 카드는 1억2천만 장이다. 1인당 5개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 전체 소비의 57%를 카드로 결제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카드 천국이다. 정부의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2000년 소비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카드를 안 받으면 처벌하고, 또 카드 사용자에게는 세금을 공제해줬다.

그런데 최근 경기 침체와 더불어 자영업자들이 위기를 맞고 있는 반면 카드사들 호황을 누리고 있다. 3년 반 동안 7개 카드사 순이익은 7조3천억원에 달한다. 이런 이익 때문에 카드사들 간의 고객 확보 경쟁은 어느 때 보다 치열하다. 작년에 마케팅 비용으로만 1조7천억원 정도를 썼다.

금융소비자협회 관계자는 “카드사 간에 과도한 경쟁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비용 절감과 수수료를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논란이 뜨겁지만 정작 카드사가 가맹점수수료로 돈을 얼마나 버는 지는 정확히 모른다. 카드사들이 자세한 수익원별 공개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카드, 국민카드, 현대카드 등 다른 국내 대형 카드사는 정확한 가맹점수수료 수익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모두 비상장사이다보니 경영현황 공개에 인색하다. 삼성카드만은 가맹점수수료 수익이 얼마인지 자진신고를 하고 있다. 카드사 가운데 유일한 상장사이다보니 가장 투명하게 경영현황을 공개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카드사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은 만큼 상장된 금융지주 계열의 카드사들은 상장사 수준의 경영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